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제(서진)/기타 창작물 (문단 편집) === [[삼국전투기]] === [[삼국전투기]]에서는 [[오란고교 호스트부]]의 [[히타치인 카오루]][* 동생 사마유는 [[히타치인 히카루]]의 패러디인데, 패러디와는 정반대로 히카루가 형이고, 카오루가 동생이다. 참고로 [[사마사|아버지]] [[사마소|형제도]] [[오쿠무라 린|쌍둥이]] [[오쿠무라 유키오|캐릭터]].]로 패러디되어 나왔다. 첫 등장 때의 대사가 ''''아잣!! 황제 등극!!''''이며 황제 자리를 날먹했다는 인상을 준다. 전투외편 8-2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진의 초대황제로 괜찮은 인물이었지만 변한다고 서술됐다. 전투외편 8편에서 처음 등장. 사마소의 정식 후계자가 됐으며, 사마소 사후 4개월 뒤 조환이 제위를 선양하면서 진의 황제로 등극했다고 묘사됐다. 진의 황제로 등극한 뒤 시작부터 스케일 크게 가자며 최고위직을 삼공에서 팔공(태사, 태부, 태보, 태위, 사도, 사공, 대사마, 대장군)으로 개편했으며, 위의 조씨는 자기 편이 너무 없어서 망했던 거라며 종친 사마씨들을 죄다 왕으로 봉하기로 정했다. 사마유는 그랬다간 중앙집권이 약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지만 사마염은 형제 친척을 못 믿으면 누굴 믿겠냐고 일축했고, 동시에 자기 자리를 가장 위협하는 건 사마유지만 그런 사마유에게도 봉토와 선임권을 줄 거라며 --오만--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사마유에게 설마 이 형이 널 반란수괴로 몰까봐 두려운 거냐며 웃는 건 덤. 막장의 극을 달리던 손호와는 달리 사마염은 군주로써는 '''아직까지는''' 꽤 괜찮은 인물로, 제도, 법률, 예법 등을 개선하며 좋은 나라 만들기에 힘썼다고 묘사됐다. 언제나 솔선수범하며 자기가 모범이 되고자 한 건 덤. 치두구 사건도 밍크코트로 알기 쉽게 설명하기도 했는데, 처음엔 태우라고 해놓고 ''''음..태우는 것도 낭비인 것 같으니 그냥 입을까?''''하는 속마음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사마염의 타락을 예고하기도 했다. 단, 만화가 삼국 통일 편에서 끝나기 때문에 사마염의 타락은 암시만 되고 본편에서는 평범하게 좋은 군주로 묘사된다. 오의 정봉이 이간책을 시전했을 당시 왕침의 모함으로 인해 석포를 의심하게 됐다. 양호는 석포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 두둔했지만 그것만으로 사마염의 의심은 풀리지 않았고, 여기에 더해 석포가 아들을 중앙으로 보내라는 명을 거부하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어 사마망을 시켜 수춘 정벌을 명했다. 그러나 석포가 이후 죄를 청하며 모든 군권을 포기하자 바로 의심을 풀어버렸다(...) 군권을 포기한 석포에게 대신 삼공의 직책을 내린 건 덤. 이후 사마염은 오나라의 강아지가 너무 기가 살았다며 오와에 국경 지대에 장수들을 적절히 배치해 언제든 밀고들어갈 수 있게끔 준비를 해 놨다. 다만 [[독발수기능|예상 밖의 사태가]] 터지면서 바로 쳐들어가지는 못했다. 독발수기능의 난 편에서는 촉이 멸망하고 진나라가 들어선 뒤 기존의 위-촉 최전선에서 행해지던 둔전을 폐지하고, 대신 순의의 의견으로 그쪽 지역에 점전 과전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거기 살던 유목민족들이 크게 반발하자 중앙에서는 이민족들의 지역만 옹양주와 익주 일부에서 따로 떼어내 진주로 재편하고 진주자사로 호열을 보내기도 했는데, 이후 호열이 난을 일으킨 독발수기능과 싸우다 패퇴하고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사마염은 호열이 못 막으면 대체 누구로 막을 수 있냐며 멘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하증의 제안으로 석감과 두예를 보내며 뭔가 좋은 콤비같은 기분도 든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또 실패했으며,[* 이 와중에 자기 공을 허위로 부풀려 보고하려던 석감을 면직시키는 장면이 지나가기도 했다.] 이젠 또 누굴 보내냐며 멘붕한 끝에 사마준과 견홍을 보내기로 정했다. 사마염 본인은 준 삼촌까지 보냈는데 못 잡으면 진짜 답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견홍이 죽으면서 난의 조기 진압에 완전히 실패했고[* 이 때 과거회상으로 진건이 호열과 견홍을 변경에 보내면 안 된다고 반대했었지만 사마염이 진건이 호열과 견홍과 사이가 나쁜 건 알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묵살했던 장면이 지나간다. 당연히 사마염은 진건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결국 사마준을 중앙으로 다시 소환했다. 그리고 사마염은 이제 또 누굴 보내야 하냐며 고민에 빠진다. 이젠 양호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양호마저 보내버리면 안 그래도 사마준과 견홍이 빠지면서 대폭 차질이 생겼던 대오전선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릴 것이기에 멘탈이 나간 건 덤. 이후 임개의 추천으로 가충을 보내려고 하기도 했지만 가충의 딸이 황태자비가 되면서 무산되었고[* 가충 일파는 가충의 딸을 황태자비로 만들고자 오만가지 뒷공작을 벌였다. 사마염은 아무리 봐도 위관의 딸 쪽이 더 낫다 여겼지만 하도 주변에서 난리를 피우자 어차피 자기 부인도 아니고 아들 부인이니까 대충 하자며 가씨로 결정했다(...)], 대신 사마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어 양흔 등과 함께 서량으로 보냈다. 이후 사마준이 몇 년간의 대치 끝에 독발수기능 세력을 거의 궤멸로 몰아넣자 이제 남은 건 양흔 정도로도 충분하다 여겨 사마준을 다시 중앙으로 소환했다. 한편 문앙의 활약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자기들을 10년간 괴롭히던 놈을 이 나라 저 나라 옮겨다니던 뜨내기가 잡았다는 이야기가 돌면 자기들 위신이 말이 아니지 않냐며 문앙도 중앙으로 소환했다.[* 사마염은 개인적으로 문앙을 싫어했기에 문앙이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그를 백수로 만들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양흔이 삽질을 벌이는 바람에 독발수기능이 아예 서량을 점령해버리자 이희가 빨리 토벌해야 한다 했을 때 말을 들었어야 했다며 또 멘붕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였다. 마륭이 자신을 보내 달라고 하자 그쪽으로는 경력이 없지 않냐며 당황했고, 마륭이 할 수 있다고 하자 군도 대부분 대 오 전선으로 편제되어 있어 변변한 병력도 없다고 다시 난색을 표했으며 이에 마륭이 3천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자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패해도 어차피 3천명이고 적어도 시간이라도 벌 수는 있을 거라며 마륭을 서량으로 보냈다. 이후 마륭이 무기고 담당과 싸움을 일으키자 마륭에게 무기고에서 마음껏 병기를 선택할 수 있게끔 권한을 주었고 물자도 넉넉히 3년치를 지원해 줬다. 이후 마륭이 정말로 독발수기능을 박살내자 자기 선택이 옳았다며 크게 좋아했고, 오 정벌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나 독발수기능의 난 시작 부분에서 언급했듯 독발수기능의 난은 북방 이민족들의 폼이 슬슬 올라온다는 증거로, [[영가의 난|앞으로 진의 운명이 절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제대로 경고한 셈이라고 묘사되었다.]] 독발수기능의 난 중반부부터 사마염에게 턱수염이 생겼다. 다만 서릉 전투 편은 시간대가 독발수기능의 난 이전이라 도로 수염이 사라지기도 했고 삼국 통일 편에서 다시 수염이 생긴다. 서릉 전투 편에서는 보천이 투항해오자 크게 기뻐하며 양호에게 서릉을 접수하고 오라는 명을 내렸다. 삼국 통일 편에서는 276년경 양호의 의견을 받아들여 오 정벌을 하려 하지만 가충 일파가 반대하고 장화, 두예를 제외한 대신들 대부분이 가충 일파에 찬동하여 오 정벌을 포기했다. 그리고 양호가 죽은 뒤[* 양호가 죽기 전 그에게 오 정벌 사령관직을 부탁하기도 했지만 병이 깊던 양호는 이제 자기는 민폐만 될 거라고 거절하였고, 대신 두예를 추천하였기에 두예를 양호의 후임으로 임명하기도 했다.]에는 눈물을 흘리며 이번에야말로 너의 뜻대로 오를 정벌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하필이면 독발수기능이 서량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또 오 정벌이 미뤄지게 된다. 그러나 279년경, 두예와 왕준이 하루를 멀다하고 상소를 올리고 장화 또한 바둑판까지 엎어 가며 진지하게 오 정벌을 주장하자, 사마염은 드디어 오 정벌의 결행을 결심한다. 가충 일파는 또다시 반대하며 들고일어섰지만 이번에는 사마염이 황제답게 이들을 전부 찍어눌러버렸다. 그리고 가충을 대도독으로 임명하며[* 당연히 명목상으로만 대도독일 뿐이고 실질적 지휘자는 장화였다.] 대규모 오 정벌이 시작됐다. 그리고 왕준이 건업을 함락시키며 마침내 오가 멸망하자, 사마염은 눈물을 흘리며 축배를 들고 이 모두가 양호의 공이라고 말했다. 이후 항복한 오왕 손호를 초대하기도 했다. 전투외편 8-2에서는 [[고우영 십팔사략]]을 제외한 대부분 창작물에서 무시되었던 [[구품관인법]]의 장단점과 [[팔왕의 난|지나친 황족우대 정책의 문제점]]을 제대로 설명한다. 여담으로 진나라의 군복은 금색인데, 사마염이 [[금수저]]라는 것과, 삼국지 최후의 승자라는 것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